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가리아 왕국 (문단 편집) === [[페르디난트 1세(불가리아)|페르디난트 1세]] 치세 === [[불가리아 공국]]이 1908년 [[오스만 제국]]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통치자이던 [[페르디난트 1세(불가리아)|페르디난트 공]]이 [[차르]]로 승격하였다. 팽창주의적이고 투쟁적인 국가였기에 [[오스만 제국]]에서 불가리아 [[내셔널리즘|민족주의]]자들은 [[그리스 왕국|그리스]] 민족주의자들만큼 골칫거리였다. 그리고 언어적으로 유대가 있는 [[마케도니아]]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두 차례의 [[발칸 전쟁]]을 일으키기도 했다. 왕국 선포 10년 만에 3번이나 전쟁을 치러(1차 발칸 전쟁 - 2차 발칸 전쟁 - 1차대전) '발칸의 [[프로이센]]'이라는 별명을 얻었다. [[제1차 세계 대전]] 당시에는 4개국에 불과한 [[동맹국]]의 일원 중 하나였다. 기본적인 국력차 때문에 후대에 별로 주목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2차 발칸 전쟁 때의 설움을 갚아주려고 독이 단단히 올랐었는지 참전하자마자 발칸 전선에서 [[세르비아 왕국|세르비아]], [[그리스 왕국|그리스]], [[루마니아 왕국|루마니아]]를 털어먹고 다녔으며, 심지어 원정 온 영국군과 프랑스군 상대로도 우위를 점했다. 지지부진하던 [[세르비아 왕국|세르비아]]-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|오헝]] 전선이 1915년 불가리아가 전쟁에 뛰어들자마자 순식간에 동맹국에 유리해졌을 정도.[* 다만 세르비아가 전력을 죄다 오헝 방면에 때려박은지라 뒷마당을 고스란히 내준것도 있었다.] 1918년에는 [[부쿠레슈티 조약]]을 체결하여 2차 발칸전쟁에서 빼앗겼던 남도브루자도 수복하는 데 성공한다. 그러나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패색이 짙어지자 결국 동맹국 중 제일 먼저 항복, [[협상국]]과 [[뇌이 조약]]을 맺었고 그리스와 세르비아에게 영토를 빼앗겼으며 군비 제한까지 당했다. 페르디난트 1세는 1918년 터르노보 공[* 불가리아 왕국에서 왕의 후계자에게 붙이던 칭호.] 보리스에게 양위하고 고향 독일로 은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